애정의 반대는 무관심이라고 말해.

re0000

Conversation Backup
야츠모
야츠모

(문자.) [나와 봐]

이치지쿠
이치지쿠

(2분 뒤에 돌아오는 답장...)
[(*ฅ́˘ฅ̀*) 누구신가요~? 마리아는 잘 모르겠어요~!]

야츠모
야츠모

[야]
(3분 후...)
[어디야]

이치지쿠
이치지쿠

(어째선지 보내는 데에 걸린 시간은 비슷한데...)
[낯선 사람한테 함부로 의치를 알려주는 건 위험한 일이잖아? 그렇지? 너도 조심하는 게 좋겠다고 충고해 주지 않았던가, 소년?]
(길어.)

야츠모
야츠모

[됐어 그럼 내일 다시 물어본다]
(1분.)
[크리스마스라고 알아?]

이치지쿠
이치지쿠

(잠깐 공백, 4분.)
[네가 이 날짜를 기억하고 있는 줄은 몰랐네.]

야츠모
야츠모

[날 뭘로 보는 거지? 넏]
(아. 실수.)
[최대한 맞추려고 뛰어다닌 건데, 진짜 안 알려줘?]

이치지쿠
이치지쿠

(고민하듯 액정 위를 가볍게 두드리는 손 한번, 그리고 답장은 아주 약간 딜레이된다.)
[트리 보이는 골목 안?]
(장소, 어쩐지 미묘하게 불온하다...)

야츠모
야츠모

...골목? (뭐 이런 게 다 있어? 트리는 금방 찾았다. 근처의 골목을 들쑤시기 시작한다... 한... 5분 정도. 짧아.)
[자세히]

이치지쿠
이치지쿠

(트리를 보고 있었으니 이쪽에서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비슷하게 '짧아.' 생각한 듯 혀를 한 번 차더니...)
[냄새로 못 찾는 거야?]
(같은, 누가 봐도 놀리는 문자 이후 곧바로 다음 문자가 뒤따른다.)
[거기서 오른쪽으로 보이는 파란 건물 옆.]

야츠모
야츠모

('냄새 같은 소리...' 발끈해서 적던 문장을 마무리하기도 전에 다음 문자가 도착한다.) ... (설명해주는 그대로 걸음을 옮긴다.)

이치지쿠
이치지쿠

(골목에서 들어오는 걸 빤히 보고 있었다. 핸드폰 액정 때문에 들어오는 빛이 되려 여길 더 어둡게 만드는 거 같은데, 여튼...빤히 보길 몇 초 정도. 의외로 먼저 입을 연다.) 생각해봤는데 말이야....

야츠모
야츠모

(목소리에 눈을 가늘게 뜨며 고개 든다. 핸드폰은 덮어서 주머니로.) ... ... (일단은 침묵. 그 자리에 서서 뒷말을 기다린다.)

이치지쿠
이치지쿠

-아무래도, 역시, 나는 상냥한 게 맞는 것 같아. (라고 지인이라면 딱히 아무도 동의하지 않을 말을 침묵 사이로 고하고, 이치지쿠는 맞추듯이 핸드폰을 접어 집어넣고 잠깐 빙긋 웃는다.) 크리스마스 선물은 있어? 없다면 받고 싶은 게 있는데. (걸음이 가볍다.)

야츠모
야츠모

... ('상냥'? 의외로 여기에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말이 전부 끝난 뒤에야 겨우 입 연다.) 대충 생각해둔 건 있지? 실물은 아직. 원하는 게 있다면 되도록 맞춰...줄 의향이 있거든. 그렇게 받고 싶은 게 뭐길래?

이치지쿠
이치지쿠

사실 그렇게 구하기 어려운 건 아닌데. (다른 생각을 하듯 시선이 허공을 향했다가 다시 두어걸음 가까워진다. 그리고는 큰 준비 동작도 없다, 워낙 어둡고 옷도 어두워야 말이지. 심장 부근이 화끈할 수도 있다. 강도와 팔 힘을 고려하면 따끔일수도 있겠지만...그리고 담소 나누는 듯한 말투.) 실은 고민을 좀 했단 말이야, 기분이 별로 안 좋아서 이걸 어떻게 할까 하고 말이지. 나는 그래, 친절하니까 조금은 멀리해 줄까도 고려해봤고 말이야. 내가 찾아온 건 아니니까 참작의 여지도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소년? (얼마 안 가 찾아갔을 거란 건 둘째치고...) 그리고 새삼 안 건 괜한 고민이라는 것 정도일까.

야츠모
야츠모

뭣하면 근처 선물점이라도... (말소리는 여기서 끊긴다. 그 뒤로 들리는 소리라고는, 짧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것 정도. 어느 손으로 칼을 쥔 거지? 양손? 모르겠다. 눈에 들어오는 손목을 누르듯이 잡는다.) 좋...아, 멀리해 달라는 부탁은 하지도 않았어. 용케 불러냈네, 너... (이런 것도 바로 회복이 가능한가? 역시 모르겠다. 일단 지금은, 뒤지게 아프다. 가슴 언저리에서부터 화끈한 통증이 참 선명하게도 느껴진다.) 괜한... 고민? 왜, 뭔가 더 깨달았어? ...

이치지쿠
이치지쿠

나는 솔직하게 살고 있고. (아마도 양손. 그대로 대각선으로 움직이려던 손이 잡혀 멈춘다. 조금 더 힘을 줘 봤다가 '어쩔 수 없지' 하는 표정으로 힘을 푼 채 살짝 빼내다가-다시 한 번 조금 위를 노려 찌르기를 시도한다.) 솔직하게 사는 게 신조고 말이야, '일단은' 그래, 다시 생각해보니 역시 피해주기에는 기분이 별로였고... (손이 조금 질척하지만, 아무리 힘이 약해도 이 정도 깊이는 아니었다 싶어 말하던 도중 "전보다 튼튼해졌구나?" 느리게 한 마디. 감탄보다는 어째, 어조가 이죽이는 투다.) 그리고, 기분 말이지. 기분...
고마워.
덕분에 머리가 맑아졌거든, 쿠로이키 군. 자신의 기분을 100%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지만, 실은 30%의 감정이라도 명확하게 알고 있다면 꽤 상위권인 사람이라는 거 알아? 설마 나도 허점이 있을 줄은 몰랐지.

야츠모
야츠모

(날이 빠져나갈 즈음 긴장이 풀리던 몸이 다시 경직된다. 그래도 아직 살만하다는 건가, 직전에 찔려 벌어진 상처에서 붉은 게 흘러나와 옷을 적셔도, 새롭게 꽂힌 칼날을 보고도 잡념이 든다. '막을 수 있었을 텐데.' 막고 싶지 않다는 건 또 뭔지.) 뭐가 이렇, 게 까지 기분을 나쁘게 만들었을까... (손은 아직까지 손목에. "너는 여전하네..." 힘이 부족하잖아, 힘이.) ... ... 요지는, 너도. (슬슬 한계다. 이대로 죽는 건 사양이니, 우선 잡은 걸 바깥으로 밀어낸다.)
너도... 모르겠다는 거잖아, 네가 지금 무슨 기분인지.
(그새 처음의 상처가 아물기 시작한다. 속도는 한참 느리지만, 보통은...) 화풀이, 아냐? ... 나 아니었으면 진작 죽었을지도 모른다?

이치지쿠
이치지쿠

(피가 뚝 떨어지며 뽑힌 칼을 물끄러미 보다가 문득 입꼬리가 올라가고, 웬일로 순순히 수긍한다.) 그래, 화풀이지. ...그보다 안 죽었으니까 괜찮잖아? 원래 이 부근은 뼈도 많이 있으니까, 5대 5확률이잖아.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이런 말을 포함하여 화풀이일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제대로 인지하고 있다는 점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까?) 그리고...
아까 그건 과거형이야. '고맙다'고 했잖아, 머리가 맑아졌다고. 너는 지금에 와서도 모르는 모양이지.... ("그래서 좀 더 고민하고 살라고 했던 것 같아." 느리지만 아무는 것이 눈에 보이는 상처를 빤히 보면서 비죽이는 입이 딱 봐도 놔주면 또 찌를 거 같은데. 저 체질 덕분에 구사일생했는데 뭐가 문젠지...)
아마 배신감이겠지.

야츠모
야츠모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 평생 못 알아들을 수도 있다, 그거 아냐... (태클 걸 구석도 꽤 많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 하긴, 하루이틀도 아니지... ...라고 생각하기에는, '오늘의 이건 좀.' 게다가 이쪽 입에서 나오는 말도 뒤죽박죽이다. 열이 나는 것 같다.) 그래, 배신감. (단단히 잡고있던 손을 놓는다. 찌를테면 찔러라. 꼭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아래에 머물던 시선이 이치지쿠의 눈으로 향한다.)
배신감이... 들었다는 거지. 내가 집을 나가, 서? (심호흡.) 아니면, 전부 비밀로 하고... 눈 앞에 나타나서, 태연하게, 연기까지 하니까... ('분명 더 빨랐던 것 같은데.' 확실히 일반인보다는 수월하게 나아지는 중이겠으나, 어쩐지 고통은 그대로다. 미간 찌푸린다.) 그것도 아니면, '가짜'한테 받은 짜증까지 전부 떠넘기는 거냐.
아니... 됐어. (자유로워진 두 손이 눈 앞의 몸을 끌어안는다. 찌르라니까.) 말 안 해도 돼.

이치지쿠
이치지쿠

(풀려난 손이 기다렸다는 듯이 칼을 고쳐 쥐었을 때다. 돌연 끌어안긴 상황에 이치지쿠의 눈이 크게 뜨인다. 그대로 시선이 움직여 야츠모를 바라본다. 시선 대치, 침묵이 3초,) ...들어! (짖는 듯한 외침이 한번. 칼날이 조금 아래, 명치 부근을 찔렀다.) '말 안 해도 된다' 니, 전부 이해하기라도 하는 양 말하긴! 뭐야, '집을 나가서' 냐니. 그건 어차피 너도 아니잖아. 비밀이니 태연하게 구는 건 당연하지. 숨겨야 하는 일을 굳이 말하는 멍청이 같은 건 본 적이 없네. 이미 이해는 끝났어. 당연하잖아? 나는-...
(하는 말이 어째 뒤죽박죽하다. 반응과 모순된다고 봐도 좋다. 그리고 대화의 흐름은 빠른 사고를 따라가듯 점프해, 이치지쿠는 돌연 상냥한 목소리가 부드럽게 중얼거린다.) 좋아.
인정할까 해. 배신감이라는 건 신뢰의 반대라는 걸. 그러니까...내가 어리석었다는 걸, 인정하겠다는 말이야.
(꾹, 칼을 누르던 손을 천천히 뒤로 뺀다. 믿고 싶다, 라는 감각이란 건 누구에게나 있는 법이다. 있겠지만...) 이제 너 같은 건 믿지 않을 거야.

야츠모
야츠모

(귓전을 때리는 외침에 끌어안는 팔의 힘만 더해진다. 끊이지 않는 통증 덕에 온몸의 신경이 예민해져 재차 파고드는 칼날의 움직임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놓지 않는다. 아마 난도질을 해도 마찬가지였을 거라는 사실을, 말 대신 행동으로 전하기라도 할 생각인 건지.) 듣고있어. 전부 들었어. 제대로... (이후 이치지쿠의 태도가 뒤집히기 전까지, 줄줄이 쏟아지는 문장에 나긋한 목소리의 대꾸가 이어진다. 그리고 지금.)
...마찬가지, 라고. 믿지 않아도 된다고. 아니... (어지럽다. 빈혈인가? 멍청한 소리다. 피를 그만큼 쏟았는데 멀쩡한 쪽이 이상한 거니까. 이치지쿠의 어깨에 고개를 숙여 기댄다.)
...믿지 마. 나 믿지 마.
(기껏 찾아와서 변명 한 마디도 못 하고, 찌르려 드는 칼은 무식하게 정면으로 맞으면서, 이 우스운 꼴은 또 뭔가. 몸의 힘이 풀리기 시작했는지 이치지쿠에게 실리는 체중이 무겁다. 그러는 와중에도 한 마디는 꼭 해야겠는지, 기어이 입을 열었다.)

받아가고 싶은 건 이게 끝이냐?

이치지쿠
이치지쿠

...그런 말이나 하려고, (끌어안긴 몸이 한 번 휘청 흔들린다. 축축한 손이 야츠모의 목깃을 잡는다.)
그런 말이나 하려고 불렀어? 변명도 제대로 못 하고, 그나마의 선물도 나한테 물어서 줄 생각이야... (아하, 하고 조소가 흘러나온다. "멍청이." 한마디가 먼저. 이어서 생각을 안 하는 게 습관이 됐다던가, 단세포를 넘어섰다던가, 어쩌면 익숙할 욕이 줄줄이. 하지만 또다시 웃을 수밖에 없는 점을 고른다면...이유가 뭐가 되었든 결국 여기에 순순히 안겨 있다는 점이 되겠다. 이치지쿠는 다른 손으로는 피가 흘러나오는 상처를 손으로 되짚어보며 질문을 떠올렸다. 받아가고 싶은 건 이게 끝이냐고.) ...그거 알아, 쿠로이키 군?
네 몸은 어째선지 꽤 튼튼해진 것 같지만...사실 사람이 죽는 건 상처 자체보다는 고통이나 실혈 때문이라고 하거든. (찌른 게 본인인 건 늘 그렇지만 무시하고 넘어간다.) 아마 이대로 그냥 있으면 너라도 죽을지도 모르지. 그러니까..
이대로 두든 처리를 해 주든...


네 목숨은 내 거지?

야츠모
야츠모

(정신이 멀어진다는 게 무엇인지 실감하는 일이 꽤 늘어난 것 같다. 눈앞이 어둑해진다, 고 할까 흐려진다는 말이 더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이거, 얼마 전에도 한번 겪었었지. 그때도 정말 죽는 줄 알았는데, 내심 안심했던 이유는 말이다...) 아아, 잘 알지... 사람 죽는 건 많이 봐왔거든. 그러니까...
(야츠모 자신보다도 이쪽이 죽는 걸 왠지 달가워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하나 떠올랐다. 아닐 수도 있고, 단순한 바람일 수도 있지만 막연하게 먼저 그려졌던 얼굴은 오오우나바라 이치지쿠. 그러니까.)

...마음대로 해. 가져가든, 버리든...이건 네 몫이야. 메리 크리스마스.
(마지막 말을 끝으로 암전. 다음에 눈을 떴을 때 보일 풍경이 어떨지는.)

이치지쿠
이치지쿠

(완전히 기절한 몸에 밀려 주저앉은 사람이 그를 옮길 수 있을 리는 없다. 피에 젖은 바닥에 앉아서, 쓰러진 몸과 기대고 있던 이치지쿠가 그제야 움직인다. 바닥에 고인 피와 갈라진 상처를 한 번 확인하고, 그런 중에도 시시각각 사고가 바뀌던 머리로 출혈량을 가늠하고.) 메리 크리스마스 같은 소리...
(그래, 맞다.)
(자기가 찔렀고, 진짜로 죽일 생각도 있었고, 그것도 나쁘진 않지만 동시에 그건 싫다고 생각하는 인간이다. 따라서 피가 천천히 멈추는 사이 이치지쿠는 결국 핸드폰을 든다. 이런 체질이라면 구급차 같은 걸 부를 수 있을 리도 없고...결국 사람을 따로 불러 '기숙사'로 향하면서 굳이 턱을 괴고 창 밖을 바라본다.)

(아마 눈 뜨면 또다시 '낯선 천장'이고, 하지만 익숙한 얼굴이 빤히 보고 있겠지. ...타이밍이 안 좋다면 '익숙한 얼굴들'이.)

야츠모
야츠모

(눈이 뜨인 것은 그날의 새벽. 아침이 밝기 직전의 시간, 입은 상처에 비하면 이른 기상이다. 관성적으로 눈이 뜨인 것이다. 그 말은 즉,) ... ... 여긴... ('어디지?' 낯선 공기에 사고가 헤매기도 잠시, 시야에 들어오는 건 전 동거인의 익숙한 시선. 아니, 시선들.)
미쳤나. (작게 앓는 소리와 함께 몸을 반쯤 일으켜, 뒤로 기댄 팔꿈치가 제 상체를 지탱한다. 내가 알던 침실이 아니다. 방 내부를 한 차례 훑고 나서야 많은 눈동자들 사이에서 한 쌍과 눈을 마주친다.)
...눈 뜨자마자 인사하는 상대가 흙이 아니라는 건 다행이네.

이치지쿠
이치지쿠

···흙이랑 인사하고 싶었어? 도와주지 못할 것도 없는데. (부러 이죽이듯 대답하며 손을 흔들어 물수건 같은 걸 클론들 손에 싹 들려 내보낸다. 개중에는 완전 처음 보는 얼굴도 있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닐 것이다.)

야츠모
야츠모

다행이라고 한 건 못 들었냐? (클론을 저렇게 찍어냈다는 걸 아예 몰랐던 건 아니다. 이케부쿠로는 소식이 빠르고... 하지만 방을 가득 채운 같은 얼굴들이 사라질 때 즈음, 눈에 스치듯 지나간 저건 얘기가 다르지.) ...오오우나바라. (완전히 일어나 앉는다.) 뭐지?

이치지쿠
이치지쿠

못 들었는데. (시선을 창 밖으로 돌리곤 다시 되묻는다.) 질문이 이상하군. 뭐가?

야츠모
야츠모

모르는 척 하지 마. (침대에서 내려와 두 발로 서려다 통증이 찾아온 건지, 몸이 굽어진다.) 윽... 너 말야, 이럴 때마다... (겨우 도착한 곳은 이치지쿠의 옆.)

이치지쿠
이치지쿠

(물끄러미 바라만 보다 눈을 가늘게 뜨고 찔렀던 부분만 꾸욱 눌러보는데···.) 이럴 때마다?

야츠모
야츠모

... (미간이 잔뜩 좁아진다. 나 환자인데?) 아주 귀여워서 안아주고 싶다고, 됐어? 진짜 안아주랴?

이치지쿠
이치지쿠

(꾹꾹. 해놓고 다시 손 뗀다.) 아, 그래? 너무너무 기쁘다, 쿠로이키 군······. 그럼 그래 보던가?

야츠모
야츠모

...(정말 안는건가 싶더니, 뒤로 돌아간 손이 등만 두어 번 두드리고 도로 멀어진다.)

이치지쿠
이치지쿠

헤타레. (이죽이듯 말하곤 침대 옆 창가에서 턱을 괸다.) 그래서? ⋯크리스마스라 뭐야.

야츠모
야츠모

(침대에 도로 드러눕는다.) 같이 좀 있자고. 슬슬 나 보고 싶어할 것 같아서 행차해주셨다... 오오우나바라 이치지쿠 님께서 자비롭게 살려주신 덕분에 기회도 시간도 생겼으니까. 그런데, 그럴 필요 없었나? (혼자 이질감이 들었던 '한 명'을 떠올린다.) 이미 손님이 많으시네. 애초에 왜 집이 아니지?

이치지쿠
이치지쿠

왜 내가 추궁받는 것 같을까? 이상하네에···. (마지막 질문에 짧게 뜬 공백을 자리에서 일어나는 동작으로 흘린다.) 집에 제대로 된 피 같은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라면 착각이야, 이참에 불로불사 같은 게 되고 싶은 거라면 상관없지만. 그렇다고 병원에 가서 실험체 같은 게 되고 싶은 것도 아닐 거 아냐?

야츠모
야츠모

(누운 채 이치지쿠의 움직임을 따라 눈동자만 움직인다. 빈정대는 마지막 물음을 듣고서는 한동안 천장에 고정. 또다시 이어지는 건 침묵이다.) ...다 나았어. 돌아가자. 그리고 설명해. 아까 그게 뭔지.

이치지쿠
이치지쿠

(이번의 공백은 그대로 남았다. 누워있는 야츠모를 머리맡에서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이치지쿠는 돌연 얌전해진 목소리로 "그럼 이제 일어나" 말한다.) 왜 설명해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야츠모
야츠모

(한 손 내민다. 일으켜 주라는 건가?) 그럼 멋대로 해석할거야.

이치지쿠
이치지쿠

(눈을 가늘게 뜬 채 바라보다 손을 얹기만 한다. 어차피 못 잡는 거 알지 않느냔 듯,) 말해 봐.

야츠모
야츠모

역시 보고 싶었지? (잡아당긴다.)

이치지쿠
이치지쿠

(잡아당겨져 거꾸로 그 위에 비스듬히 쓰러진다. 머리를 가볍게 문질러 명치 위를 꾹 누르다가) 내가 너라면 그런 질문은 안 할 텐데?

야츠모
야츠모

(환자라니까. 역시나 표정 구겨진다. 전보다는 한결 가벼운 낯이다.) 이거 아니면, 뭐라고 할 건데.

이치지쿠
이치지쿠

(표정 구겨지는 걸 보더니 그제야 흠, 하고 짧게 웃는다. 야츠모의 옷 위에 남은 핏자국 부스러기를 손끝으로 긁었다.) 맞다고 치자. (끝까지···.) 그럴 경우 네가 이걸 계속 물어봤을 때 얻을 수 있는 건 내가 다시 한번 더 '찌를까' 고민하는 루트라고 생각하지만?...

야츠모
야츠모

찌르던가. (물론 그때가 오면 아무리 야츠모라도 피하든, 잡든 하나는 할 것이다. 아프기 싫다거나 다치면 번거롭다거나, 그런 건 둘째 치고- 버릇이 되는 게 곤란하다. 죽음이야 뭐... 걱정하기에 그 영역은 이미 제 것이 아니고.) 질문을 바꾸지. 계속 둘 거냐? 그거.

이치지쿠
이치지쿠

(자기가 찌르겠다고 해 놓고 쉽게 수긍하자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을 한다. 정말이지 어쩌라는 걸까. 죽으란 건지 살라는 건지···.) ···아까 본 클론 얘기, 아직 하는 거야? 왜.

야츠모
야츠모

(시선은 아직까지 천장이다.) 마음에 안 들어. 내 얼굴이잖아, 그거.

이치지쿠
이치지쿠

(그러자 마찬가지로 시선을 돌린다. "뭐야.") 왜 내가 혼나고 있는 거야? 사이좋게 지내. 네 동생일지도 모르잖아.

야츠모
야츠모

동생 같은 거 가진 적도, 원한 적도 없거든? 네가 만든 거잖아. 저... 클론인지, 뭔지. 제대로 대화는 해봤어? (침대 시트의 반동과 함께 한번에 상체를 세운다. 내려다보자 다시 눈이 마주친다.)

이치지쿠
이치지쿠

(빤히 보다가 시선이 천천히 움직인다. 약간 비껴간 모양새다.) 글쎄. (했을 리가 없지. 만들다 말았으니까. 가장 막내일 것이다.) 어차피 이런 시기엔 대답 같은 거 못 해, 저건.

야츠모
야츠모

(클론의 성장 속도나 과정에 대해서는 모른다. 저게 얼마나 자란 건지, 단순히 미완성인 건지... 역시 모른다. 하나는 어렴풋이 감이 잡힌다.) 더 빨리 나와줬어야 했나. (당연한 소리를.) 이쪽 봐. 너는 뭐, 나한테 더 물을 거 없고?

이치지쿠
이치지쿠

(사람 곤란하게도 대답을 안 한다. 아마도 긍정해야 한다는 사실이 내키지 않는 거겠지. 시선이 느지막히 마주친다. 미간 주름 한 번, 이어서 뭔가 놓아버리듯 가벼운 숨 한번만 내쉰다.) 글쎄···. 쿠로이키 군. 밀린 일은 다 끝낸 걸까나, 그럼.

야츠모
야츠모

(꼭 이런다. 확실한 답변을 원할 때는, 절대 해 주지를 않는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야츠모는 이런 상황에 익숙해졌다. 무언은 곧 긍정이다···.) ··· 끝냈어. 확실하게 전부. 이봐, 오오우나바라.
(줄곧 못마땅했던 점 두 번째.) 이름으로 불러.

이치지쿠
이치지쿠

애도 아니고. (한편, 뭐가 못마땅한지 일부러 꿋꿋이 성으로 부른 주제에 하는 말이 그렇다. 본 시간 때문에, 알기는 무척이나 쉬우면서.) 그래, ⋯야츠모 군.

야츠모
야츠모

···. (내려다보던 시선이 가까워진다. 몸과 고개를 숙이는 탓이다. 결국, 두 이마가 맞닿는다. 툭.) '불문율'이라는 거야. 멋대로 바꾸지 마. 이건 양보 못 해. (움직이자 닿은 이마가 비비적거린다.) 사이좋게 지내라고? 가능은 하겠지··· 그래도 싫은 건 변함 없어. 저게 왜 필요해? 난 돌아왔는데.

이치지쿠
이치지쿠

멋대로 정하지 마. (본인이 멋대로 움직인 건 딱히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성격이다, 하여간. 미간 사이에 작게 주름을 잡고 빤히 보다가 맞닿은 이마를 문지르듯 가볍게 꾹 마주 민다.) 네가 그렇게 네 유일성을 신경쓰는 줄은 몰랐는데. ⋯좋아, 그럼. 냉장고 넣어 둘래.

야츠모
야츠모

(그러니까 익숙하다고, 멋대로 구는 정도는. 마지막 말에 가만히 온기를 나누기를 몇 분, 제 고개를 들며 겸사겸사 이치지쿠의 양팔도 잡아 일으킨다. 둘 다 침대 위에 마주 앉은 꼴이다.) 신경 썼어, 썼으니까 '가짜'도 없애려고 했던 거야. 그야, 물론⋯. (그 가짜는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잘 살아있다. 자리는 되찾겠다 큰소리치면서 복수조차 안 하는 애매한 태도. 그럼에도 아무 죄 없는 같은 얼굴의 클론은 왜 이렇게까지 거슬려하냐면,) 반은 너 때문이지.
(침대 바깥을 향해 돌아 앉는다.) 가기 전에, 뭐, 들르고 싶은 곳이라던가⋯.

이치지쿠
이치지쿠

네가? ⋯어차피 그냥 둘 거면서. (애매한 태도를 언제 한두번 봤냐는 듯이 가볍게 콧방귀 뛴다.) 싫기는 하다니 전보다는 발전했네, 소녀. 아예 다른 사람인 거랑, 네가 근본인 건 너라도 다가오는 게 다른 모양이지. 됐어. 난 미리미리 준비하는 준비성 좋은 사람이라 선물도 다 전해줬다고. (이 즈음 평소처럼 이죽이다가 문득 야츠모의 볼을 쭉 잡아당겨 본다. 이건 확인인가?)

야츠모
야츠모

내가 근본이라는 사실 자체가 싫은 건 아냐. (솔직히, 원인이 이쪽인 건⋯ 마음에 든다. 우습게도.) 꺼림칙하다던가, 기분 나쁘다던가⋯ 그런 감정이랑 좀 다르다고, 말 안 해도 알잖냐. (보통 이런 걸 질투라고 하지. 아무튼. 설명은 관두고, 다른 질문이 먼저 튀어나온다.) 다? 나는- (내 선물은? 그 타이밍에 뺨이 잡혀서 쭈욱.) ⋯⋯. (잠깐 멍청한 표정.)

이치지쿠
이치지쿠

(주욱. 주욱⋯. 두어번 잡아당겨보다가 볼 옆도 살살 긁어보더니 그제야 손 내린다. "바보같은 얼굴.") 답지 않은 소릴 하네⋯. (그러는 첫번째 원인을 전에 본 소란으로 먼저 확인했다. '진짠가' 한 것이다. 금방 얼버무리듯 볼을 꾹 눌렀다가 올렸다가, 표정을 가지고 놀기 시작했지만.)

야츠모
야츠모

⋯. (어디 한번 마음껏 가지고 놀아봐라⋯. 저지는 하지 않는다. 대신 이쪽도 손 뻗어, 이치지쿠의 입꼬리를 검지로 쭉 올려본다. 웃는 얼굴도 꽤 본 것 같은데, 이렇게 만들어두니 어색하다. 이 타이밍에 튀어나오는 답지 않은 소리 하나 더.) 미안.

이치지쿠
이치지쿠

(슬슬 놔줄까, 하고 떨어지던 손이 반사적으로 다시 한 번 꽉 잡는다. 나름의 다짐을 전부 무용지물로 만드네. 결국 나오는 건 귀찮은 질문이다.) 미안해? 뭐가?

야츠모
야츠모

혼자 둔 거.

이치지쿠
이치지쿠

⋯딱히? (신경 안 썼는데? 라는 말은 하려다가 만다. 역시 그렇다고 하기엔 저지른 게 많다.) 그러지 말자고 약속한 것도 아니고. (그제야 손에 힘을 빼고 볼에 붙은 야츠모의 손을 잡아 떼어내면서,) 확실히 업무 태만이었지만. 그건 반성하지?

야츠모
야츠모

딱히? (눈 가늘게 뜬다.) 그거야 당연히⋯ 아니, 다르잖아. 내가 설마 일 안 했다고 사과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가만히 시선 맞춘다.)

이치지쿠
이치지쿠

⋯넘어가! (혀를 차며 시선을 피했다가 결국 찌푸린 채 마주본다. 할 말을 못 찾는 건 굉장히 드문 일이다. 노려보는지 눈싸움을 하는지 모를 표정으로 응시하다 겨우 흘러나오는 말이 고작 이렇다.) ⋯또 그래 봐.

야츠모
야츠모

⋯⋯. (마지막 한마디로 눈싸움 종료. 재차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 안 믿기로 했으니까, 이제 어디 간다고 하면 절대 보내주지 마. (그리고 들쳐멘다. 굉장히 오랜만인 것 같은데도 익숙한 그 포즈로⋯.)

이치지쿠
이치지쿠

(굉장히 쓸데없는 안정감이 느껴져 버렸다⋯. 무심코 가만히 있더라니, 뒤늦게서야 깨달은 듯 등을 쿡쿡 찌른다.) 잠깐, 이거 머리 아프다고. 차라리 업어!

야츠모
야츠모

좀 아프고 말아라, 나도 지금 몸 아파 죽겠거든? 아무리 그래도 세 번을 찔러? (낯선 내부 둘러볼 틈도 이제야 생겼겠다, 방 밖으로 향하며 두리번거린다.)

이치지쿠
이치지쿠

⋯. 살아있잖아? (이게 변명인가 해명인가 헛소린가⋯. 한편 건물 내부는 묘하다. 사무실인가 병원인가 공용 기숙사인가, 알 수 없는 복도에서 가끔 클론 한둘이 기웃거리듯 빤히 보고만 있다⋯.)

야츠모
야츠모

그거 말인데, 정말 죽었으면 어쩌려고 했어? (네 몫이라고는 했지만. 중얼거리면서 복도를 걷다 보면 또 눈이 마주친다. 같은 얼굴의 다른 존재라는 건⋯⋯.) 많아.

이치지쿠
이치지쿠

(매달린 채 약간 웅크린다. 대개 하는 일이 '저지르고 수습' 의 성격을 띄는 것처럼, 이번에도 거기까진 생각하지 않았다.) 그건 그거대로 목적 달성이잖아. 왜 물어봐? (물론 잠깐 잘됐다고 웃고, 그 다음엔 왜 안 일어나냐고 한참 뭐라고 했겠지. 결국은 말을 그만두고 뒤에 흘러나온 감상을 받는다.) ⋯어쩔 수 없잖아? 이미 있는 걸 다 처분하기에는 아깝고.

야츠모
야츠모

("그래? 그렇다면 됐고." 굳이 더 캐묻는 짓은 하지 않는다. 외면이 익숙한 사람들의 대화라는 건 꼭 이렇다. 그리고, 그 뒤에 나올 말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에⋯.) 그래도 많아. 아무리 나라도 저런 것들을 어두운 곳에서 마주치기라도 하면 심장에 안 좋거든? (호러적인 의미로. 현관으로 추정되는 문의 문고리를 당긴다.)

이치지쿠
이치지쿠

왜? 아무튼 귀엽잖아, 옛날 너희들에 비하면. (그건 반강제로 비위가 단련된 딱 본인 이야기고. 현관 문을 열자 의외로 낯설지는 않은 경치가 보인다. 그래, 기프트 사였던 폐허의 근처 골목. 적응한 건지 다리만 가볍게 흔들거린다.)

야츠모
야츠모

옛날 너희들'? 아아, 그거. (눈에 들어오는 낯익은 풍경. 덕분에 '집'까지 돌아가는 발걸음은 막힘 없다. 걸음을 떼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묻는다.) 지금의 감상은?

이치지쿠
이치지쿠

(흘끗, 보이지 않는 얼굴을 올려다보더니 상체를 어렵게 올려 야츠모의 어깨에 팔꿈치를 대고 턱을 괸다. 한번 한숨 쉴 정도면서도 아무튼 멋은 부리고 싶나⋯.) 글쎄? 별로 큰 차이 없네. 전보다 보기 편해지긴 했지만. 그런데 비밀번호 까먹진 않았니?

야츠모
야츠모

뭐야, 그 싱거운 반응은. (엘리베이터 탑승. 여기까지는 자연스럽다.) 내 기억력을 너무 과소평가 하는 거 아니냐? 몇 달 비웠다고 비밀번호 잊을 정도는 아니거든. 네가 바꾸지만 않았다면⋯ (누르기 시작한다.)

이치지쿠
이치지쿠

(끝까지 누르면 삐비빅, 하고 문이 쉽게 열린다. 그동안 어째선지 침묵하고 있던 이치지쿠가 뒤늦게 입을 연다.) ⋯바꿀 예정이었는데 바빠서 까먹은 거야.

야츠모
야츠모

(잠금 해체음을 듣고는 입꼬리가 올라간다. 역시.) 돌아오길 기다렸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어디 덧나? (그대로 다시 현관을 지나 제일 먼저 마주하는 곳은 거실. 적당히 소파에 내려둘까. 그 전에⋯) 여행은 어땠어.

이치지쿠
이치지쿠

안⋯. (아마 거실 책상 위에 있는 포장된 선물 보면 택도 없는 소리지 싶다⋯. 조금 늦게 거기까지 생각이 간 듯 혀를 차더니 방향을 돌리기로 한 듯 다시 입을 연다.) ⋯그래, 기다렸는데. 덧나? 다행이지, 크리스마스 다음엔 정말로 바꾸려고 했으니까. (쓸데없이 오래 기다린 것이다. 그 일에 대해서, 진심으로 후회하고 있다.) 여행은 또 어떻게 알까나⋯. 재미있었어, 무서운 할아버지랑 같이 비행기도 타고 소란도 있고⋯. 같이 가 보고 싶었는데 아쉬워지기라도 했어?

야츠모
야츠모

어, 그래. 많이 아쉬웠다. 됐냐? (포장된 선물로 눈길 한 번. 다만 저게 무엇인지 묻거나 확인받지 않는다. 직접 주기 전까지, 저건 못 본 거다.) ⋯원래 기념일 같은 거 안 챙겨. (이치지쿠를 소파에 앉힌다.) 크리스마스도 별 의미 없어. 거리가 좀 시끄럽고, 온 집안 사람들이 트리를 꺼내놓는다⋯ 그 정도. (대꾸할 틈도 주지 않고 말을 이어가며, 옆에 자리잡는다.)
역시 혼자 두기는 싫다고 생각하던 참이었으니까, 크리스마스에 말이야. 너라면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다고. 그래서⋯. (으, 제 머리 헤집는다.) 아, 잠깐⋯⋯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이치지쿠
이치지쿠

(뭐라고 한마디 입을 열려다가도 틈이 없어 뚱하게 앉아 듣기만 한다. 도중에 잠깐, 아마도 절로 흘러나왔을 소리 한 번. "흐음." 곧 뚱한 표정 그대로 고개를 돌려 야츠모를 흘끗 훔쳐봤다가 다시, 포장되기만 한 채인 선물을 봤다가⋯.)
⋯그래서? (손을 내려 소파를 짚는다. 옷깃이 눌린다.)

야츠모
야츠모

(손을 내리는 동시에, 고개가 아래로 푹 꺼진다.) ⋯내버려두고 싶지 않았어.

이치지쿠
이치지쿠

(조금 뒤에 이치지쿠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희미하게 들리는 발소리, 그리고 부스럭, 포장지가 찌그러지는 소리. 이 이야기를 좀 더 일찍 들었다면 좋았을 텐데.)
(결국 선물은 다소 거칠게, 숙인 고개를 반쯤 때리듯이 위에서 떨어진다.) ···이 멍청이!

야츠모
야츠모

(툭, 뒷통수를 치고 머리 옆으로 떨어지는 선물을 한 손으로 잡는다.) ···멍청이 맞아. (조심스레 포장 뜯어본다.)

이치지쿠
이치지쿠

(포장지를 뜯으면 버건디 색의 목도리가 장갑과 같이 놓여져 있다. ···고민이라도 했나? 써낸 선물 아래에는 옅은 민트색의 같은 목도리가 같이 깔려 있고···. 웬일로 선물에 편지가 한 장도 없네.) ···하난 이리 줘.

야츠모
야츠모

이거- (색이 다른 두 목도리라. 민트와 버건디의 두 개를 번갈아 보고, 시선은 이치지쿠에게로 이동한다.) 자. (내미는 건 민트 색의 목도리 쪽.)

이치지쿠
이치지쿠

(고른 색을 보자 아주 옅게 만족스러운 기색이다. 민트색 목도리를 접어서 책상 위에 치운 뒤 팔짱 한 번.) 해 봐.

야츠모
야츠모

(두 손으로 넓게 잡아 펼친 뒤 목에 두르기를 두어 번. 묘하게 폼이 엉성하다.) ⋯.

이치지쿠
이치지쿠

···이리 줘. (목도리 끝을 잡아서 다시 풀고, "해본 적 없는 것도 아니면서." 어쩐지 독기 빠진 목소리다. 두 번 감아주고 다른 끝을 반대 고리에 넣어서 메주고 손을 뗀다.)

야츠모
야츠모

(고개 슬쩍 기울여 목 언저리를 보고, 기껏 접어 올려둔 민트색 목도리로 손을 뻗는다.) 글쎄다⋯. (하나 남은 목도리는 자연스레 주인을 찾아간다. 이치지쿠의 목에 감아 똑같이 매어 주나 싶던 게 뱡향을 틀어⋯ 리본을 묶기 시작한다. 직전의 엉성함과 대비되는 능숙함⋯.)

이치지쿠
이치지쿠

···. (어이없다는 얼굴로 보며 목도리 끝만 잡아당긴다. 다시 저것도 리본으로 묶어줘 말아? 생각하듯 빤히. 곧 짐짓 어른스럽게 흥 한다.) 기껏 리본 참아줬더니 뭐야? 네 것도 리본으로 묶어달라고?

야츠모
야츠모

어울릴 것 같아서 해준 건데? 왜, 마음에 안 드냐? (묶은 리본 조금씩 당겨 위치까지 맞춰준다. 그것보다 이거, 목도리 못 매는 거 아니었잖아. -만일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면 이미 늦었다. 완성.)

이치지쿠
이치지쿠

(아마 자꾸 꿍 하고 손을 올리게 되는 기분이 이럴까? 자연스레 볼을 잡을뻔한 손을 내려 멀쩡하게 메 준 목도리를 리본으로 리폼해준다.) 아이, 귀여워라.

야츠모
야츠모

얼씨구. 좋아? (어이없다는 투로 리본 매듭을 쭉 쭉 당겨보길 몇 번. 문득 같이 들어있던 게 떠올라, 잠시 내려뒀던 장갑 집어든다.) 얘도 나 주는 거?

이치지쿠
이치지쿠

왜 네가 어이없다는 말투일까? 난 착하고 상냥하게 그냥 목도리 메 줬는데 리본 묶기 시작한 게 누굴까? (황당하다는 듯 보다가 한마디.) 지금 뺏을까 고민중이야. (치사하다.)

야츠모
야츠모

뺏어서 뭐 어쩌게, 내 손에 맞는 사이즈면 너한테는 맞지도 않을 텐데. (정말 뺏기 전에 손에 끼운다.)

이치지쿠
이치지쿠

그야 당연히 내가 쓰진 않겠지. (장갑 쓰는거 뚱⋯하게 보다가 크기 맞는 걸 보면 '그래야지' 하는 듯 묘하게 뻔뻔하고 뻐기는 듯한 표정이 된다.) 전에 건 애초에 너무 낡은 거 아니야?

야츠모
야츠모

바꾸기 귀찮아서 말야, '슬슬 하나 사야지' 하던 참이었고. 용케 타이밍도 맞고⋯ (잠시 침묵.) ⋯사이즈도 잘 맞췄다?

이치지쿠
이치지쿠

그럼 사이즈 안 맞는 걸 주겠니?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쇠한다. 오히려 되묻기⋯.) 넌 몰라? (보통 그렇지⋯.)

야츠모
야츠모

나는⋯. (오른손 펼쳐 내민다.)

이치지쿠
이치지쿠

너는? (손끝을 눌러본다. 크게 빈 부분이 없는 것에 만족하면서.)

야츠모
야츠모

(밀어서 깍지 낀다.) 이 정도면 충분히 알겠는데?

이치지쿠
이치지쿠

(어이없다는 얼굴로 본다.) 이걸로 크기 비교 외에 뭘 알아? (장갑 낀 손을 마주 잡고, 그대로 길이를 비교하듯 손 마디를 세운다.) 네 손이 몇 센치도 모를 거 같은데.

야츠모
야츠모

비교해서 가늠할 수 있는 정도면 된 거 아냐? 내 손은 항상 나한테 달려 있으니까. (제 손 크기도 모른다는 말에는 부정하지 않는다. 그게 뭐 중요한가⋯. 잡은 손 안쪽으로 당긴다.)

이치지쿠
이치지쿠

(당겨진 손을 따라가듯 팔이 앞으로 내밀어진다. 뭔가 한마디 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가, 이치지쿠는 그냥 앉아있는 야츠모의 위로 털썩 앉는다.) 그래서, 뭐였어?

야츠모
야츠모

⋯뭐라니, 뭐가? (또 멍청한 소리.)

이치지쿠
이치지쿠

네 선물 말이야. 실물이 아직 없댔나?

야츠모
야츠모

⋯아. (그걸 지금 물으면 곤란한데⋯. 중얼거린다.) 넌, 목도리는 어쩌다 생각해낸 거지?

이치지쿠
이치지쿠

(뭐야? 하듯 시선을 줬다가 소파에 하듯 편하게 뒤로 기댄다.) 아무튼 지금은 없단 거지. 소파 노릇이나 해. (반쯤 괴롭히기 아니야? 라고 생각하신다면 정답이다.) 그야⋯⋯12월 1월에도 반팔로 다녀놓고 새삼 물어볼 주제야?

야츠모
야츠모

그럼 두 개나 골라온 건 또 뭐고. (한 세트 됐잖아⋯. 그대로 기댔다면 아마 머리에 버건디 색의 목도리가 닿아 꽤 푹신할 거다. 깍지 낀 손은 아래로 내려간다.) ⋯크리스마스 겸, 연말 기분이라도 내자. 캐롤이라도 불러 봐. (무슨 요구인지.)

이치지쿠
이치지쿠

(푹신. 한편 자기 목에 걸린 목도리를 반대편 손으로 만지작거리다가 살살 풀어낸다.) ⋯뭐어, 네가 자주 입는 색은 아마 민트색 같고? 나는 배려심이 깊으니까? 편하게 매치할 수 있는 색을 골라서 고를 수 있게 해 준 거 뿐이고? (생각한 그대로, "무슨 요구사항이야?" 하며 투덜거린다.) 캐롤 몰라서 그러지, 너.

야츠모
야츠모

그럼 그런 걸로 하자~. (⋯뭐야, 왜? 비어있는 손 올려 그대로 팔이 목을 감는다.) 완전 잘 아는데? 너⋯ 노래 못 불렀던가. 음치, 이런 거 아니지?

이치지쿠
이치지쿠

집 안이잖아? 오래 하고 있으면 덥기나 하지. (그래놓고 감겨진 팔은 안 치우는 건 어떻게 보면 투명하다.) ⋯겠어? 잘 부르거든? 네 음악 성적은 기억하는데. 늘 남아서 보충하고 갔잖아? (그리고 이에 대한 코멘트를 달 새도 없이 허밍부터 시작한다.)

야츠모
야츠모

더우면 창문 열어. (바보 같은 소리 하나 더. 시기 좋게 눈이라도 내린다면 분명 창가는 눈밭이 될 텐데도⋯ 말하는 동시에 창밖으로 시선 눈다.) 그야 이론은- ('어려운 게 맞잖아?' 뒷말은 허밍의 시작에 묻혀 속으로 삼켜버린다. 목을 안은 팔에 힘이 들어가 더욱 바짝 붙은 것도 같다.)

이치지쿠
이치지쿠

(허밍은 금세 익숙한 캐롤로 바뀐다. 가끔 거리에서 흘러나오는 익숙한 CM이다. 기대 앉은 채 고개만 조금 기울여 비스듬히 하자 틈이 더 줄어든다. 결국 노래를 다 부르지는 않고 도중에 멈춘다.) 뒤 가사 알아? 나머진 네가 불러. (그러면서 잡고 있던 손가락 사이를 쿡쿡 건드리더니 하는 말이, "여기 장갑은 빼 봐." 한다.)

야츠모
야츠모

(왼팔 위로 고개를 살짝 숙이자 이치지쿠의 머리칼이 얼굴을 간지럽힌다. 노래가 끊기자 잠시의 공백 후, 기억났다는 듯 다음 가사가 이어진다.) ⋯⋯. (어색한 멜로디와 함께 천천히 깍지를 풀고 오른손의 장갑을 벗는다.)

이치지쿠
이치지쿠

⋯너, 몇 년간 이거 불러본 적 없지? 노래 연습 좀 해. (어색한 멜로디의 끝에 불쑥 한마디. 타박하는 말투가 어째 기분이 좋아 보인다. 이번엔 스스로 흉터가 많은 맨손과 깍지끼듯 손을 잡는다.)

'LOG' 카테고리의 다른 글

썰백업  (0) 2024.11.14
흑해탐구 관계부문  (0) 2024.09.11
Poetry In Motion _ zombie apocalypse  (0) 2024.09.06
흑해 기타 썰백업  (0) 2024.09.05
흑해 플레이리스트  (0) 2024.09.05
DALB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