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의 반대란 무관심이라고들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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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주의; 장기밀매...야쿠자...약...경마...하......... '이치지쿠'

 

 

 

 

"뭔가 말야..."

"이거 아픈데."

"이제 해부하는 거 좀 질리네."

"저기, 아프다니까?!"

"유우토 군, 구성은 평범하고."

"지금 소감 말할 때야?"

"마취제 슬슬 치사량인데 말이야, 역시 안 듣나? 실시간으로 분석해 주는 기계 갖고 싶은걸."

"뭔가 앞으로 나, 조금 더 경계심을 가지는 게 좋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근데 취미가 하나 줄어든다니 우울하네에...다음엔 뭐 하는 게 좋을까? 좋은 생각 있어?"

"이상해. 이 상황 진짜로 이상해!"

"유우토 군이 말해도 말야."

 

 

 

 

 

 

 

부드러운 목소리가 말한다. 메스가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상냥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경쾌한 어조로, 손 끝에서 떨어지는 핏방울을 검지와 엄지로 천천히 문지르면서.

 

"사람도 아냐, 라는 말을 자주 욕으로 쓰죠. 사실 그런 말을 들을 정도라면 어지간한 쓰레기니까 넌 사람도 아냐, 감정이 없어, 그런 말을 듣는다고 해서 욕으로 인식하고 상처받을 리는 없는데 말이에요. 상처받을 거라고 기대하는 거겠죠. 사회가 정한 규범과 상식을 벗어난 일을 이제와서 양심 찔려할 거라고 말이야. 뭘 믿는 걸까요, 인간성? 신기한 일입니다. 사람과 세상에 전부 절망한 것 같은 눈을 한 사람도 언젠가 저 말은 내뱉게 되거든요. 결국 이러니 저러니 해도 모두 사람이나 인간이란 거에 일말의 신뢰가 있어요. 왜, 쿠즈미씨도요...예전에 여기 잡혀온 사람 이름이 뭐였더라. 하하. 기억 안 나네...배신자라고 했나? 정말 신기하다니까. 야쿠자잖아요, 쿠즈미 씨. 폭력으로 먹고 살고, 뭐 요즘 시대도 시대라 인텔리로 전환한다는 사람도 보이지만 결국은 사람 피로 살아가는. ...아, 무서운 눈이네. 6년간 안 죽였으니까 1년만 더 봐주자구요. 언제든 죽일 수 있으니까 관대해지자는 건데요, 어떠려나...... 아무튼요. 이런 세상에 힘의 논리 말고도 다른 규칙이 있다는 게 재미있다고 할까. 배신자는 용서할 수 없다니, 이 세계에서 배신은 살인이나 그런 것보다 중죄인걸까나. 사이가 나쁜 조직에 뭘 팔았던가 흘렸던가, 그런 게 계기가 되서 사람이 죽을 테니까 중죄라고 하면 그건 어쩔 수 없겠지만. 결국 죽었죠, 그. 매정한 사람이야...그러고 보면 쿠즈미 씨나 이쪽 분들이 오히려 그런 건 철저하네. 진실이라던가 진심이라던가, 영혼이라던가..."

 

이녀석은 아마 제정신이 아니다.

 

그는 처음 이치지쿠와 대면했을 때 깨달았다.

 

세상에 어떤 제정신인 녀석이 야쿠자의 협박이 궁금하다고 재산의 반을 날릴 만큼의 돈을 빌리고 갚지도 않은 채 버티다 끌려온다고. 짠 바닷바람과 시멘트 냄새가 코끝을 감도는 항구의 구석에서 피를 흘리면서 웃고 있던 이치지쿠는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한 채 콘크리트에 널부러져 크게 숨을 토하고 한마디 말했다. "와, 죽는 줄 알았네."

 

건방지다고 투덜거리는 이들도 많이 있었지만 그, 키노하라 쿠즈미는 그런 감상을 가지지는 않았다. 왜냐면 애초에 머리가 이상한 놈이잖아. 미쳤다거나 멍청하다거나가 아니라, 뭔가 사고가 단단히 뒤틀린 놈이다. 어딘가 나사가 빠지고 브레이크가 안 듣는 부류. 그런 경험이 며칠 전인데, 이치지쿠는 아주 예의 바르게 선물 과자까지 사서 사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여러분한테 관심이 많거든요. 다른 일로 죽을 뻔한 적이 있었는데..."

 

좀 비교해 보고 싶었어요. 발랄한 어조로 '신세 좀 져도 되나요' 같은 말을 지껄이는 게 어이가 없어서 쿠즈미는 방금 불을 붙인 담배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고속도로를 가로질러 가겠다는 녀석을 보면 느껴지는 기분이 있을 것이다. 딱 그 기분이었다. 뭔 개소리야. 이게 소꿉장난인줄 아나. 그 이후 적당한 몸의 대화가 이루어졌다. 어찌저찌 유명 인사라는 점이나, 경찰이 주시하던 시기라던가, 그 소설가 양반의 팬인 녀석이 한명 있었다거나, 아는 사람에게 뭘 말해둔건지 며칠 전 경찰 손에 들려간 일 같은 기타등등이 어우러져 구사일생한 셈이다. 세상은 아직 상냥해. 어쩐지 감동까지 느끼면서 그는 이치지쿠를 돌려보냈다. 그러나 또 며칠, 그날 이치지쿠를 찌른 칼에서 피냄새가 가시기도 전에 이치지쿠가 활짝 웃는 얼굴로 엉망이 된 손에 케이크 상자를 들고 찾아왔다.

 

"이해할 수 없는 건 꺼림칙하죠."

 

이치지쿠는 떨리는 손을 펼쳐보이며 웃었다. 겁을 먹었군. 이해할 수 없는 반응에 질렸던 만큼 더 크게 웃는 사람들 사이에서 쿠즈미는 입맛을 다셨다. 하필 저런 말을 하면서 대놓고 '저 무서워요' 하는 손을 보이는 이유가 뭔지 영 꺼림칙했기 때문이다.

 

"참, 소개가 늦었죠. 소설가입니다."

"그건 알고 있어."

"읽어본 분이 계셨지. 신기하네요~, 메이저한 장르는 아닌데."

"잡담 하러 왔나?"

"본질적으로는요."

 

백화점에서 예약으로만 살 수 있다는 케이크를 몇 조각 잘라 검사하듯 먹고 밀어둔 채. 낡은 사무실에서 말단 셋과 함께 적당히 이치지쿠를 응대하며 그는 창문 너머를 바라봤다. 두목, 적당히 지위가 있는데 해를 끼치진 않지만 귀찮은 미친놈은 어떻게 하는 게 제일 좋을깝쇼.

 

곤란했다. 실로 곤란했다. 솔직히 말하면 당장 지금이라도 어디 야산에 묻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쉬운 인간이라 더 곤란했다. 마음이 풀리는 거지. 아예 미친 놈이면 좋다고 묻어버릴 걸, 체면은 아는 인간이라 그럴 건덕지는 또 없었다. 적당히 질려서 도망가면 제일이건만 이쪽이 익숙해질 정도로는 넉살이 좋았다. 여기저기 말을 걸고 소란을 피우거나 아양을 떨거나 해서 나왔다는 소설은 기분이 나쁠 정도로 멀쩡한 물건이라 쿠즈미는 갈수록 떨떠름해졌다. 그즈음 사회의 시선을 신경쓸 수밖에 없게 된 두목은 문인은 문인이라는 말로 이치지쿠를 집안에 들였다.

 

"소설가라는 건 좀 더 대단한 양반들 아닙니까?"

"저건 좀..."

"닥쳐 봐, 새끼들아."

"하지만 형님,"

 

저건 좀. 여성용 기모노와 가죽 점퍼에 야구 모자라는 조합은 어떻게 되어먹은 건지, 요즘 젊은 것들은, 하고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쿠즈미의 표정이 급속히 썩어들어갔다. 양 팔에 화려한 이레즈미 넣은 야쿠자가 그런 말 할 때냐.

 

하기야 저 근본 없는 복장이 어울린다는 것이 더 기묘했다. 이치지쿠는 이야기를 나누며 무언가를 적다가 그를 보고 웃으며 모자를 벗어보였다. 예의를 차리는 건지. 그제 다른 놈을 열받게 해 주먹을 맞은 볼에 큰 거즈가 붙어 있었다.

 

되짚어보면 볼 때마다 불편한 것은 이러한 이유이기도 했다. 어느새 적응해버린 중에도 이치지쿠는 분란을 만들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차라리 일을 크게 벌이면 몰라, 적당히 다혈질인 사람만 쏙 골라 심기 불편한 말을 모르는 척 연달아 찔러대니 당첨이 몇개씩은 나오고 자잘한 소란이 벌어졌다. 귀찮으니 그만 오게 하자 싶을 즈음에는 또 귀신같이 조용해져 질질 끈 게 1년인가 2년이 지났다. 그러나 쌓인 불만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즈음이었다. 누군가가 무단으로 이치지쿠를 현장에 데려간 것이.

 

이쯤에서 짚고 넘어가자면, 쿠도회는 피나 폭력과 같은 1차원적인 사업에서 한 발 빼내어 조금 더 스마트한 작업으로 옮겨타는 중이었다. 적당한 브로커나 밀매업자와 연계해서 아주 조금씩. 그래봤자 일반인이 보기에는 거기서 거기지만. 아무튼 그중에 하나가 장기 밀매 같은 일로, 이건 나름대로 연이 있어 연차도 쌓인 사업이었다. 그걸 짜증나는 녀석 겁 주고 볼썽사나운 꼴 보기 위해 데려가다니 요즘 젊은 것들은. 누군가의 운명이 차가운 시멘트 바닥을 구르는 걸로 결정된 순간, 이치지쿠는 손에 쥐여준 칼로 사람의 배를 가르며 중얼거렸다.

 

"이렇게 생겼군요."

 

그럼 이쪽은 어떠려나. 제가 아주 관심이 없지는 않았어서요, 따로 공부한 적은 있거든요. 요즘은 금지됐던가? 수업 중에 동물 해부라면 있었죠. 중얼거리면서 메스가 춤추듯이 움직인다. 데려온 인간이 되려 질린 표정을 짓는 사이 이치지쿠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웃으며 되물었다. 가끔 또 신세 져도 될까요?

 

그는 지긋지긋한 마음으로 두목을 찾았고, 경사스럽게도 허락이 떨어졌다. 

 

그리고 지금, 이치지쿠는 똑같은 작업을 마무리하고 피에 젖은 손을 물에 씻었다.

 

"저번에 유스케 군 말인데요, 그거 감염증이라니까. 손은 제대로 씻으라고 학교에서도 알려주고 있고, 장갑도 친절하게 준비되어 있는데 왜 자꾸 맨손으로 하는 걸까나. 아, 쿠즈미 씨 그거 알아요? 이제 유명해서 초등학생도 아는 애가 있던데.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도 나를 들여다본다. 그러니까 사람 가를 생각을 한다면 자기도 그만큼 상처받을 각오와 주의가 필요하다고 할까."

"날이 갈수록 헛소리만 느는군."

"너무하네에, 농담인데. 풍경이 너무 살벌하니까. 분위기 쇄신 겸?"

 

수도꼭지를 잠그자 물방울이 하나 아슬하게 매달렸다 떨어진다. 쿠즈미가 피냄새로 찬 방 안을 둘러봤다. 이치지쿠 외에도 해체를 도운 두 명, 재료를 가져온 셋, 분류하는 한 명, 백의를 갖춰입은 이치지쿠 외에는 화려하거나 어두침침한 상의를 입고 있다. 위에서 흔들리는 전등은 기막히게 창백한 형광등. 작은 전구가 가장자리마다 그늘을 밝히지 못해 어두웠다. 

 

쿠즈미는 한 번 더 둘러보고, 이치지쿠를 향해 말했다.

 

"......분위기 쇄신?"

"이런 일 한다고 꼭 죽을 상일 필요도 없잖아요?"

 

엘리베이터 기동음에 웃음소리가 지워진다. 이케부쿠로에 있는 대형 병원 지하는 노린 것처럼 어둡고 낡아 열린 문 너머가 괜히 더 밝게 느껴졌다. 문 틈새의 녹이 찢어지는 소리를 내며 열리자 이치지쿠가 부러 숨을 뱉는다. 1월의 새벽, 입김을 불면 담배 연기처럼 하얀 숨이 바람에 쓸려갔다. 

 

"아~, 엘리베이터는 좋네~. 이야, 문명 최고라니까. 계단은 정말 피하고 싶어요."

"노인네 같은 소릴..."

"그럴 나이죠."

 

이치지쿠는 어깨를 으쓱이며 문을 나섰다. 느긋한 걸음이 난간 앞에서 멈춰 쿠즈미는 저 너머를 한번 일별했다. 4층. 굳이 1층이 아니라 이 위로 올라온 것은 이치지쿠가 난데없이 말한 한 마디 때문이었다. 앞으로는 여기 올 일이 없을 것 같다, 고.

 

원래부터 애매한 상태로 일손을 돕는 형태일 뿐이었고, 최근 들어서는 이 핑계 저 핑계로 발길이 뜸해졌던지라 아주 예상하기 어려운 말은 아니었지만, 쉽게 벗어날 거라고 생각할 정도로 머리가 편리한 녀석은 또 아니었기 때문에 이 타이밍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시작했던 때처럼 좀 더 자연스럽게 유야무야되기를 기다릴 줄 알았는데. 

 

하긴 이 녀석이 하는 일은 이해하려고 할수록 알 수가 없지. 이치지쿠가 담배 연기를 피해서 세 발짝 빙 돌아 피하듯 걷는다. 쿠즈미는 눈으로로 그 뒤를 쫓다가 한 번 길게 연기를 내뿜었다.

 

"살기 질렸다면 솔직히 말해."

"설마요. 안 그래도 객사할 상이라는데, 충격받았다니까요? 전 오래 살 계획이었거든요."

"그런 주제에 용케 사이타마로 나갔군."

"하하. ...쿠즈미 씨는 왜 알고 있는 거람. 스토커는 아니죠? 이제 별로 안 내키거든요, 그건. 재미도 없고 끈질기고."

"아사노 놈들이 시끄럽다고."

"아, 무시당했다. 음~, 아사노, 아사노요...어디였더라?"

 

2009년. 2009년? 연도뿐인 문답이 한 번 지나가고 이치지쿠가 빙그레 웃는다. 해가 지나 3년 전의 일이다. 이케부쿠로에 정도를 모르고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는 놈들이 생겨난 게. 원래는 관동에 있었다던가. 아마도 밀려난 거겠지. 뭐가 그렇게 조급했는지, 소문이 다 돌 정도로 사람들을 채가고 다니질 않나, 가뜩이나 유명인사들이 각성제 소지로 체포되어 경찰이 주시하던 마약을 분별없이 유통시키고 다니질 않나. 난리도 아니었다. 잘못하면 이케부쿠로 주변의 조직들이 싸그리 경찰 신세를 지고 나올 판이었으니까. 그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던 게 아사노 회. 당연히 전부 잡혀들어가거나 적당히 처리되었고, 지금은 잔당만 남은 상태였다.

 

"어차피 망한 김에 소감 좀 물어봤다고 지금까지 칼을 갈고 있다니 한가한 사람들이라니까..."

"퇴로를 막은 게 네녀석이니까."

"저한테 막힐 정도로 바보인게 나쁘죠, 그건. 친구가 많아서 살았다니까!"

"중독자를 친구 취급하는 건 너 정도야. 사람 취급도 안 하는 게 보통일 텐데."

"하지만 인간이거든요. 슬픈 것도 즐거운 것도 압니다. 단지 도덕관념도 사라지고, 자기 욕망이 기준의 전부일 뿐이지. 그러니까 인간이 아니라니, 매정하잖아요? 아무리 짐승같아도 인간은 인간이에요."

 

그것을 사람은 짐승이라고 부른다. 사람이 못 된 것, 사람에서 탈락한 것. 人でなし. 그런데, 이 '사람 아닌 것들'에도 격차는 존재하는가. 쿠즈미도 또한 그 말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내뱉었다. 그렇다면 그들 모두 인간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하는 저 소설가는 어디쯤에 위치해 있을까?

 

"그래,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간이지."

"심하네, 쿠즈미 씨."

"네녀석 목숨줄이나 걱정해."

"하하. ...참 다행이라니까. 내가 이렇게나 별볼일 없고 약해서 쿠즈미 씨도 아주 죽이려고는 안 하거든. 사람들의 상냥함에 언제나 감사하고 있어요, 저는. 적선 같은 거에 가까워도 뭐든지 감사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돼요. 사랑하는 게 늘어날수록 세상은 컬러풀해지거든요. 쿠즈미 씨는 지금 채도 몇의 세계에 살고 있으려나?"

 

아마도 한참 아래겠지. 쿠즈미는 지식이 넓지는 않았다. 편향된 체험이나 경험을 통해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생각하는데, 차라리 제대로 나쁜 인간이 더 멀쩡한 놈이다. 태도를 분명히 할 수 있으니까. 한편 회색이란 어떤가. 알 수 없다. 분명하지 않다. 사람은 그런 애매한 것을 좋아하지 못하는 성질이었다. 이런 세상엔 더더욱 그러므로, 사람들은 곧잘 생각했다. 잘 모르겠는 녀석은 아예 치워버리자. 혼란스럽기만 하고, 귀찮아. 다른 것보다 눈에 거슬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렇게 생각하게 될 텐데. 

 

"채도 따질 때인가? 곧 눈앞이 캄캄해질지도 모르는데. 부럽구만, 소설가 선생. 인기쟁이던데."

 

이치지쿠는 피가 묻은 백의를 벗어 팔에 걸쳤다. 펄럭이는 소리가 바람이 강도를 알려주고 있었다.

 

"예에, 경사스럽게도. 죽기는 싫은데."

 

쿠즈믹 코웃음을 친다.

 

"살고 싶으니까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다고 말이죠, 왜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걸까?"

 

그렇게 말하고 이치지쿠가 훌쩍 난간을 뛰어넘는다. 아슬아슬한 건물 끝을 걸어가며 어쩐지 즐거운 얼굴을 해, 바로 이런 점 때문이라고 굳이 말하지는 않고 쿠즈미는 떨어뜨린 담배를 신발 끝으로 눌러 껐다.

 

"죽을 거면 옆 건물에서 해. 번거로워지니까."

"그런 생각 안 한다니까요. 그보다 쿠즈미 씨 앞에서 죽어도 재미없고. 뭐랄까 이런 거 좋잖아요? 경계선이라고 할까 줄타기라는 거. 앞으로 가는 거 말곤 다 상관없어져서 즐겁지."

"경마인가..."

"열광하죠, 모두. 사람도 말도 죽어나가는데...아아, 그러고 보면 도박이라는 건 경주와 비슷하네요. 요즘 유명한 클럽 있던데, 손님을 정말 아무도 가리지 않고 받는다니 뭘 얼마나 뜯어가려는 건지."

 

참, 저 경마장도 좋아해요. 모두 잠깐 동안이지만 아주 행복해 보이거든요. 꿈을 꾸는 사람들을 보고 싶다면 거기로 가면 돼. 부드러운 목소리가 말하는 내용은 그러나 어투만큼 아름답지 못하다. 쿠즈미는 알고 있다. 그건 꿈을 보는 게 아니라 절망을 미루는 일이다. 미루고 미루다가 더이상 미룰 수 없게 되었을 때 그들은 이곳에 온다.

 

이 지하에 도착한다.

 

"클럽인가..."

"네, 스푸트니크라고 한대요."

"악취미같은 이름이군."

"상조회사가 더 어울리긴 하죠. 그러고 보면 사람이 죽고 나면 체중에 21그램의 차이가 난다는데..."

 

문득 이치지쿠는 말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어느 의사는 영혼의 무게로 정의했다고.

 

"사실 21그램이라는 숫자는 죽으면서 체온이 변해 빠져나간 땀과 체액 무게에요. 그런데 이건 대부분 모릅니다. 모두가 기억하는 건 영혼의 무게는 21그램, 이 매력적인 문장 뿐이죠. 변하지 않는 다이아몬드처럼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세요, 같은 말처럼. 그야 진실 같은 건 아무도 원하지 않거든요. 인간은 낭만으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렇다면 낭만이란 뭘까요?"

 

해는 뜨기 시작했다. 황금색이 순간 빌딩의 창들을 물들이고 저 너머에서 자동차의 배기음이 들려왔다. 이 병원이 있는 곳은 사거리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저편의 빌딩에서 진 그림자가 사선으로 옥상에 기울어졌다. 쿠즈미는 감상을 모른다. 멋진 것은 멋진 것이고 맛있는 건 맛있는 것으로 끝난다. 비유와도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때때로 그는 새벽 공기가 푸르게 내려앉은 이케부쿠로를 보고 물이나 바다를 떠올리곤 했다. 

 

그가 쭉 봐온 바다는 새카만 밤중의 도쿄만이 전부인데도 어쩐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바다. 물. 어디가 끝인지도 몰라서 많은 게 버려지는 곳. 오오우나바라 이치지쿠가 말한다. 낭만은 믿고 싶은 거짓말이라고.

 

"언제부터지? 거기."

 

이 소설가는 경찰 신세를 많이 졌다. 뒤숭숭한 일에 많이 연관되었지만 상태가 상태이기 때문에 대다수의 사건에서 피해자로 다뤄졌고, 오래 안면을 튼 세월은 기묘한 친분을 형성했다. 그건 어떠한 청탁을 들어주거나 받는 듯한 긴밀한 관계와는 거리가 멀었으나 산뜻한 만큼 들려오는 것도 많았다. 외부인이죠. 외부인이니까요. 경계할 필요가 크게 없는. 저는 꽤 편리한 인간이에요. 이치지쿠는 평가했다. 

 

"올해는 윤년이죠. 쿠즈미 씨 생일이 2월 29일이었던가?"

"아무것도 보내지 마라."

"그동안 모든 사람들의 반 정도 더 적게 축하받았잖으니까 기뻐해도 좋지 않나요?"

"네 선물은 뭐가 됐든 뒷맛이 나빠."

 

쿠즈미는 흘리듯이 대답하며 하늘을 한번 올려다본다. 쌓인 불만은 사라지지 않는다. 쌓인 원망도 사라지지 않는다.

 

"뭐, 그건 받고 나서 알아서 해 주세요. 선물이란 건 원래 그런 거죠."

"시끄러운 건 질색이야."

 

하지만 주는 사람 마음이죠. 이치지쿠가 다시 난간을 넘어 건물 안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고 쿠즈미는 기어코 담배를 하나 더 꺼냈다.

 

이 소설가는 아직 질리지도 않고 뭔가를 쌓을 생각인 모양이었다.

 

 

 

 

 

 

 

 

 

 

 

"갑자기 라퓨타라니 뭐야."

"옥상에서는 사람이 작게 보이니까 생각나서."

"......"

"라퓨타고 바벨탑이고 빌딩이고, 사람은 높은 곳을 좋아한다니까."

"20014년까진 아직 멀었나..."

"아하하, 사람이 쓰레기 같대! 야츠모 군 저거 해봐! 선글라스 쓰고 있, 아, 아야, 아프다고, 잠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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